할아버지의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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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그러니까 60년대 중반쯤으로 기억되는데
당시에는 시계와 라디오가 무척 귀하던 시절 이였지요.
시골에서 손목시계는 아주 부자집에만 가끔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초시계 같은 모양의 쇠줄이 달린 동그란 방울시계를
부드러운 천으로 싸서 한복조끼 앞주머니에 넣고
시계에 달린 쇠줄을 단추에 묶어서 다녀셨습니다.
동네사람들이 시간을 물으면 조심스럽게 꺼내어 자랑스럽게 알려주었지요.
물론 시계 밥은 수동으로 매일 테옆을 돌려주어야 시간이 가지요.
밥 주는(테옆 돌려주는) 것이 늦어지면 시계가 멈추어 서기에
제때에 맞추어 시계 밥을 꼭 주어야 합니다.
할아버지는 시계가 던 조끼를 방에 벗어 놓고 밖에서 진흙 일을 하시다가
시계 밥줄 시간이 되었으나 진흙발로 방으로 들어갈 처지가 안 되어
누나보고 시계 밥 좀 주라고 하니
누나는 부엌으로가 밥 한 숟가락을 퍼 방으로 들어가면서
이만치 주면 되냐며 할아버지에게 물으니
할아버지는 배꼽을 잡고 웃으셨습니다.
당시의 시계는 워낙 귀한 물건이여서 아이들이 만지다가
혹시 고장이라도 날까봐 근처에는 가지 못하게 했기에
이런 황당스런 헤프닝이 벌어졌습니다.
요즘은 핸드폰을 비롯하여 시간을 알려주는 물건들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시계를 차고 다니는 사람을 잘 볼 수가 없습니다.
세월의 격세지감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