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절복통

54. 삼촌

초막 2014. 8. 28. 15:57

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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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바람이 한창 불던 1970년대 청년들은 일자리 찾아 도시로 갔으며

명절 때가 되어야 친구들을 만나 볼 수 있었지요.

저의 집 삼촌도 그 시절 청년 때 서울에서 자동차 정비회사에 다녔는데

추석을 맞이하여 푸짐한 선물을 사들고 고향집으로 왔습니다.

선물 보따리를 내려놓자마자 마을로 나가 객지에서 모여든 친구들과 어울려

오랜만에 만났다며 동네 선술집에서 회포를 풀다가 술이 취하자

읍내 고급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술을 마셨는데

지금처럼 까페나 카바레 단란주점 노래방 같은 곳이 없고

선술집이나 방에서 앉아먹는 방술(일명 요정)집에서

젓가락으로 상을 두드려 장단을 맞추며

유행가를 돌아가며 신나게 부르며 유흥을 즐겼지요.

삼촌은 그렇게 밤새 술을 먹고 술이 떡이 되어 새벽녘에 들어왔습니다.

아침 제사 지낼 무렵에는 골방에서 코를 골며 세상모르고 자는데

할아버지 령이 워낙 엄하여 삼촌을 깨우니 비몽사몽간에 일어나기는 일어났습니다.

할아버지 주례(제주)로 차례를 지내는데 삼촌 옆에 서있으니 술 냄새가 등산을 하였고

그러다가 읍(무릎 꿇고 엎드려서 잠시 머리숙여 묵념하는 의식)을 올리고

할아버지는 끝났다는 신호로 헛기침소리를 내어 모두 일어서야 하는데

삼촌은 그대로 엎드려서 코를 드렁드렁 골고

할아버지는 삼촌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차며

어제 누구와 저렇게 술을 마셨뇨하며 미간이 찌푸려졌습니다.

얼런 삼촌을 흔들어 깨우자 삼촌은 화달짝 놀라 고개를 들면서

어 벌써 내 차례야하며오동추야 달이 밝아하면서 노래를 이어가려고 했습니다.

다시 삼촌을 흔들어 깨우며 삼촌 지금 제사 지내고 있어

그러자 그재서야 노래를 뚝 그치고 할아버지 눈치를 살피는데

할아버지는 아무말씀도 안 하시고 헛기침만 여러 번 하셨지요.

웃음이 나왔지만 그 상황에서 웃을 수도 없고

썰렁한 분위기에 어찌할지 몰라 황당했습니다.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에서 제사를 끝내고 제사음식으로 음복을 하려고 하는데

할아버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셔서 빗자루를 들고 삼촌을 두들겼지요

아버지와 식구들이 말려서 진정이 되었지만

삼촌은 아침도 제대로 못 먹어 빈속의 쓰린 배를 잡고 잠도 못잔 깨잔한 얼굴로

할아버지를 따라 하루 종일 성묘길 다니너라 큰 고생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할아버지 아버지도 안계시고 삼촌은 70대 어른이 되어

우리집 최고 어른이 되었습니다.

저도 고향을 떠나 도시에 살고 고향에는 할아버지 묘소만 덩그렇게 혼자 있습니다.

명절 때면 옛날 삼촌 야기를 하며 웃지만 할아버지 생각도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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