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생활

94. 노숙/

초막 2010. 8. 9. 11:36

노숙(露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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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 재재한 신발 옆에 가지런히 벗어 놓고

공원 벤치 위에 두 다리 쭉 뻗고 평안하게 누워있는 저 사람

두 눈은 감았지만 편안한 모습만큼이나 편히 잠들어 있을까?

아니면 무슨 깊은 상념에 잠겨 있을까 아마 후자일 것입니다.

 

이 더운 여름에 때 꼬지 꼬질 묻은 긴소매 긴 바지를 입고 있습니다.

저 옷은 밤에는 찬이슬 막아주는 따뜻한 이불이 되고

낮에는 남루하지만 한 벌밖에 없는 소중한 의복이지요.

그리고 소중한 자산목록 1호입니다.

 

벤치를 베개 삼고 하늘을 천장 삼아 누워 있는 거리의 천사 

마음이 편할 것 같기도 하고 괴로울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더운 여름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저 사람에게 무슨 휴가가 있으며 피서지가 있겠는가.

 

여름 내내 휴가일이고 가는 곳마다 피서지일 것입니다

이 여름이 가고 나면 그때부터 더 걱정일 텐데 

그래서 여름은 모두에게 좋은 계절입니다

한번쯤 저렇게 누워 지나온날과 앞날을 생각해 본다면

 

무더운 여름 날씨만큼이나 답답하고 먹구름이 낀 것 같습니다

좋은 계절인 만큼 시원한 여름 답답하지 않은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가난은 나라님도 못 구한다고 했는데.

어쨌든 열심히 살아가야지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거늘

 

욕심이 과하면 자기 뜻대로 되는거 보다 안 되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누구든 탈도 많고 탓도 많이 하게 됩니다.

탓하면 누구를 탓할 것이며 원망스러우면 누구가 떠오를까요

아마 자기 자신 욕심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집에 사로 잡히면 제 눈의 대들보는 못보고

남의 눈의 먼지만한 티끌이 더 크게 보입니다.

스스로를 보지 못하면서 세상이 제대로 보일 리 없지요

제 눈의 큰 대들보부터 먼저 뽑고나면 세상은 밝게 보입니다.

 

노점상[露店商]할 때 “노”자가 길 “노(路)”자 인줄 알았는데

이슬 “노(露)”자 이더군요.

노숙자 또한 길가에서 자는 사람이 아니라

이슬 맡고 자는 사람입니다.

 

이슬을 맞아 보지 않으면 이슬이 얼마나 차가운지 모릅니다.

노숙(路宿)자가 아닌 노숙(露宿)자는 참으로 힘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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