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과 추억

34. 가난과 친구

초막 2010. 8. 5. 18:19

부랄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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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가에서 홀라당 벗고 알몸으로 철퍼덩 거리며 함께 멱 감던 친구들

몸 구석 구석 어디에 무슨 점이 있고 흉터가 있는지 다 알지요

그리고 심술궂은 친구는 부끄러워하는 친구의 고추와 불알을

잡아당기며 장난치다가 싸움도 하였지요.

그래서 소실적 친구를 불알친구라 합니다.

 

가난으로 찌들었던 그 시절

지금도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하여

학교에서 무상 급식을 제공하는데

방학 때는 학교를 나오지 않아

더 힘들다는 소식은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정치야 2만불 3만불 시대로 간다며 호들갑을 떨지만

아직도 이런 어려운 사람들이 있지요.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60년대야 두말하면 잔소리고

옥수수 가루로 만든 빵은 전교생에게 수시로 나누어 주고

강냉이(옥수수)가루 우유가루 배급을 보자기에 받아 오던 기억

가정 형편이 어려워 끼니를 때우기 힘든 학생들에게는

학교에서 장작불로 강냉이 죽을 쑤어서

양동이에 퍼 와서 배식을 하였지요.

 

이 급식을 먹기 위하여

아침에 빈 도시락 달그락 그리며 학교를 갑니다.

반찬은 종이에다가 소금 싸갖고 가서

구수한 강냉이 죽 한 숟갈 떠먹고

소금 한번 찍어 먹어도 꿀맛 같습니다.

그 강냉이 죽 집에 있는 동생주려고 남겨가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그 시절을 추억으로 떠 올리지만

눈물 나는 시절 이였지요.

 

당시 집안형편이 어려운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책살 돈이 없어 새 학기마다 늘 헌책을 구해서 다녔고

학용품도 변변치 못하다보니 공부도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매분기별로 내는 기성회비( 육성회비)를

못 내어 담임선생님에게 독촉을 받다 보니

항상 기가 죽어 있었지요.

 

그 친구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의복도 늘 깨재재 했는데

하루는 아침에 등교하자마자 앞으로 끌려 나갔는데

선생님은 몹시 화가 나서 마구 두들겨 패며 왜 술 먹었냐고 다그치자

울면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아침을 먹지 못하여 배가 고파서

등교하다가 학교 앞 술도가(양조장) 앞에서 술 찌꺼미를 먹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몹시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때서야 선생님은 매를 놓으시고 그 친구도 울고 선생님도 울었습니다.

그 친구를 지켜보던 우리들도 어린 나이지만 가슴이 찡했습니다.

 

그 친구는 결국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고

어린나이에 끼니를 해결하기 위하여 부자집 소일도 해주고

좀 더 커서는 머슴을 살면서 이제는 어엿한 가장이 되었습니다.

자식들 다 키워 사위도 보고 아파트도 한 채 있고

달구지로 시골 장터을 누비며 여러 가지 잡화를 팔고 있습니다.

그때 부지런함이 몸에 베인것 같습니다

 

가끔 만나 소주한잔하며 그때 추억들을 떠올리는데 

가난도 아픔도 지나고 나니 그리움으로 다가 옵니다.

그러나 그때 친구의 이야기는 아직도 가슴이 찡해져 옵니다.

이런 내마음 그동안 세상을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했지

가슴으로 이해한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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