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안에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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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지면 눈도 침침하고 귀도 잘 안 들리고 감각도 둔해져
어디에 뭐가 묻었는지? 헤어졌는지? 겹쳐졌는지? 잘 모른다.
거기다가 기억력 판단력마저 흐릿해져
세상과 어울려 살아간다는 게 부담스럽다.
이런 현상을 깨닫고 현실에 순응하며 맞추어 살아가면 좋으련만
그 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경험이 있어
옹고집으로 통하지 않으면 살아간다는 게 곤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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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도 돌아보며 깨닫는 게 어렵고도 힘들다.
그래서 나이 먹어도 헛먹었다는 소리를 듣는다.
야구에서 9회 말 뒤집어 지는 경우가 있는데
9회 말 마무리를 깔끔하게 잘하는 팀이 강팀이고 우승을 한다.
잘 살아오다가 나이 들어 노망(치매)을 앓기도 한다.
삶의 모범답안이나 우승은 없지만
지혜롭게 살며 깔끔한 마무리가 중요하다.
있는 그대로 느껴야 편안함을 편안하게 느끼며
삶에 대한 감사함도 깨닫는다.
그렇지 못한데서 불행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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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겸손이야 말로 삶의 최고 덕목이며
나의 존재를 알리려 하고 뭔가를 내세우려고 하면 소홀해진다.
그 어떤 괴로움도 슬픔도 영원하지 않으며
기쁨도 즐거움도 내 삶 또한 그러한 것이니
어느 한쪽으로 함몰되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좋은 것은 따라하고 싶고 나쁜 것은 피해가고 싶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이다.
느끼는 것 자체로서 이미 깨닫고 변화한 것이니
그 마음의 초심을 잃지 말고 살면 된다.
마음은 간사하여 언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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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이든 슬픔이든 눈물은 순수할 때 흐르며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으니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어떻게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청청벽력 같은 황당한 일들
참담한 마음으로 절규하는 눈물들을 간혹 본다.
팔자고 운명이라 하기 엔 너무 가혹한 현실이지만
그러나 어찌하랴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한다.
운명과 현실을 거스를 자는 없다.
이런 불운 당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운명에 감사해 하고 고마워해야하지만
조그마한 이해타산이나 세상 돕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는지
주변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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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 보고 좋게 슬픈 것 보고 슬픔을 느껴야 하는데
나에게 함몰되어 팍팍하게 살면 생각 할 겨를이 없다.
망가지고 무너지고 나이 들어서야 깨닫게 된다.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인데 그렇지 못하니 막막하다.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오기와 옹고집 객기였을 것이다.
산수문제는 계산으로 풀리지만
삶은 머리로 계산만으로 풀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때로는 어리석은 선택이 된다.
삶의 정답은 없지만 순리와 도리라는 것이 있다.
궤도를 벗어나 멀어질수록 그만큼 더 불행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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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올라오는 욕망들을 누르고 참으면 고통과 괴로움이 따른다.
거기서 느껴지는 허허로움의 희열이라고 할까
그 무엇인가 가슴을 타고 짠하게 흘러내린다.
그 맛에 참고 견뎌내며 살아가는 것이며 이것이 삶이다.
죽으면 내가 죽지 누가 대신 죽을 수 없는 것처럼
삶의 의미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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