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리는 양심
/
믿음의 확신 마음으로 종교를 가지면
그동안 막나니로 살아왔을 지라도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지난날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고해성사,
말하기 어려운 속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 놓는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러고 나면 새로운 모습 새로운 마음을 보는 것 같다.
/
종교적 고해성사가 아니더라도 괴로우면
그 마음을 털어놓고 위로와 면죄부를 받아 홀가분해지고 싶어 한다.
친한 사람에게 하소연 하거나 자수하는 것도
이런 마음의 굴레서 벗어 나고져 함이다.
자신을 비우고 내려놓으면 무거운 짐을 내려놓듯 후련해진다.
그 마음의 짐이 들추어지지 않아 그렇지
원색적으로 그대로 까발려지면 범죄가 될 것도 있고
파렴치범이 될 것도 있고 도덕적으로 질타 받을 일도 있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저런 마음 꺼림 찍한 일들 몇 건씩은 갖고 있다.
/
그러나 세상이 모르기에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한 이불 덮고 자는 부부간에도 동상이몽이고
무덤까지 갖고 가야할 비밀이 있는데
그러고 보면 다 까발려지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며.
내 의지가 아닌 것도 실수도 있으니 꼭 죽을 일만은 아니다.
단지 마음 한구석을 콕콕 찌를 때가 있다.
철없을 때 저지른 불장난 이였을지라도
데은 상처는 평생을 가고 알면 용서 받지 못할 일도 있다.
/
그것 때문에 살아가면서 괴로워하는 자도 있고
그것을 무슨 무용담처럼 자랑삼아 떠벌리고 다니는 자도 있다.
이러니 세상엔 믿을 놈 아무도 없고 비밀은 없다고 했나
어떤 면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입방정을 더 많이 떤다.
들어나지 않은 부조리한 일들 그 종류와 수는 무수히 많다.
세상에 들어나 처벌받고 죄 값을 치르는 것은 단 몇 프로에 불과 할 것이다.
그래서 처벌을 받고서도 반성할 줄 모르고 재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며
다시 같은 짓을 하다가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전과 기록이 올라간다.
/
음주운전도 몇 프로나 걸려들까. 대부분은 잘 지키지만
꼬리가 길면 이것 역시 밟힌다고 상습음주운전자는 걸려들게 되어 있다.
어떤 것이든 그대로 다 들어나면
가정 파탄을 불러 올수도 있고 사회가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 이전에 양심이 잘 조절해야 한다.
그렇다고 세상이 다 이런 것은 아니고
일부 국한된 일이지만 비양심적인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세상을 비난하기 전에 자신부터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이런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 수련이고 종교다.
/
친구들과 술자리가 무르익으면 부조리한 과거사를
고해성사라도 하듯 무용담처럼 자랑삼아 깊이를 더해 간다.
그 자리 취중에는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온다.
그래서 취중에 하는 이야기를 진담이라고 했다.
여기에 끼이지 못하면 인생을 잘못 살아온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남의 이여기여서 그렇지 내가 막상 당하고 내 이야기라면 기절촉풍을 한다.
그러나 모르기에 믿기에 마음이 편하다.
이럴 때 하는 말이 모르는 게 약이다.
/
의심증은 실체도 없는 것을 가지고
더 깊이 더 많이 알려고 하는데서 생겨나는 고질병이다.
세상사는 것은 그저 그러려니 하며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믿음의 종교도 내가 나를 믿어야 믿음이 생긴다.
의심은 의심을 낳고 의심하면 끝이 없다.
찜찜하면 나부터 먼저 돌아보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의심은 내가 그러하기에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그러하면 내 주위도 상대도 그러하고 아니면 아닐 것이다.
/
잃어버린 죄가 더 크다고 의심과 불신은 내 양심의 죄가 더 크다.
세상은 내가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이고 맞다하면 맞는 것이다.
믿음(신뢰)과 불신(의심)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
언제든 뒤집어 질수 있으며 극과 극을 달린다.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하면 입이 열 개 라도 할 말이 없는 일들
하지 말어야 할 짓을 했다면
그 때는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모두가 양심의 문제다.
아픈 곳을 콕콕 찌르는 마음의 양심이
나를 한 단계 성숙시킨다.
'마음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67.시작과 끝 (0) | 2013.05.12 |
---|---|
66.얼굴 (0) | 2013.03.16 |
64.왜 걱정이 생길까/ (0) | 2013.01.10 |
63.기억보다 잘 잊어야 한다. (0) | 2012.12.28 |
62.나에게 물어보라/ (0) | 2012.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