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가는대로

98. 내 이름으로 살기가 힘들다./

초막 2013. 1. 13. 14:52

 

내 이름으로 살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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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내에게 붙여진 많은 이름들

부모, 자식, 부부, 가장, 아버지, 동료, 상사, 친구, 선배, 후배, 기타 등등

살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맺어진 인연들의 이름이다.

그렇게 자리 매김한 고귀한 이름들

나이 들어갈수록 하나 둘씩 내려놓으면서 잊혀 져 간다.

내려놓지 않더라도 제 역할을 못하면 퇴색되고 의미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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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이름은 올려 져 있지만 권한도 역할도 없는 바지사장이 된 것도 있다

나이 들어가면 집안에서도 실질적인 권한이 서서히 넘어간다.

T.V체널권, 컴퓨터 사용 권한 등도 후순위로 밀려나고

집문패와명의, 자동차소유주, 호주, 세대주, 등도

결정권 없는 이름만 살아있는 바지사장이 된다.

그럴 때 마다 서글픔이 밀려온다.

갑자기 질병이나 사고로 제 역할을 못하고

내 지위에서 내려올 때면 더 비참해 진다.

그렇게 내 지위를 잃게 되면 내 이름으로 살기가 힘들어진다.

기가 죽는다고나 할까 매사에 움추려 들고 희망도 용기도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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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을 지키려고 또 다른 것을 모색하여

새 삶을 찾으려면 자존심도 체면도 내려놓아야 한다.

내 이름 잘 지키고 살아가기가 참으로 힘들다.

그 알량한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한순간의 판단 착오로

생을 달리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자도 있다.

그런다고 체면이 유지되는 것도 아니고 더 비참한 이름을 남긴다.

내 처지에 맞게 버리고 비우고 내려놓으면 편안하고 가벼워진다.

억지로 내 이름 지키려고 잡고 있으니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다.

/

세월 따라 환경 따라 내 이름도 함께 따라서 변해간다.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잘나갈 때 이름으로 머물러 있으려고 하면

그것은 내 아집이며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언젠가는 다 내려 놓아야할 내 이름 너무 집착하지 말자.

이름을 잊고 살아가는 자들도 많은데

아직도 누군가가 기억해 준다면 살만한 세상이다.

/

연고자 없이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고

화장로에 들어갈 때 울어주는 자도 슬퍼하는 자도 없이

홀로 저세상으로 떠나가는 자를 보면서

저 사람의 이름은 누가 기억할까를 생각해 본다.

우리 주위에는 이런 자들도 있다.

/

때로는 뛰어 넘고 뒤로 물러나고도 싶지만 그럴 수도 없으며

세월의 나이와 함께 끝까지 가야 하는 것이 이름이다.

그 많은 분류의 이름을 다 기억하려고 하지 말자.

무겁고 버거운 것은 가감이 내려놓고

내 이름으로 내 갈길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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