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오는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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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묘미는 역시 벤치의 두뇌 싸움 입니다.
감독의 작은 제스처는 넓은 그라운드를 지배 합니다.
야구팬 들은 종종 감독 들이 벌이는 두뇌 싸움의 꽃으로 수비 시프트를 꼽습니다.
여기에서 수비 시프트란?
수비수가 정상적인 위치 에서 벗어나 타자의 성향에 따라 수비수의 위치를 바꾸는 것을 말 합니다.
단타를 잘 치거나.
발이 빠른 타자를 상대할 때
전진 수비를 하거나.
장타자에 대비한 후진 수비.
타자가 번트를 댈 타이밍에 취하는 번트 시프트 등이 대표적 입니다.
야구에 수비수가 있다면.
우리네 인생의 골목길 에도 ''시프트'' 가 있습니다.
인생 이라는 게임의 감독 들인 우리 에게.
그에 맞게 우리의 생각과 목표.
가치와 철학.
삶의 기준과 잣대.
삶의 나침판과 이정표.
삶의 방향 설정.
감정 등을 맞춰야 합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시프트를 구사하는 것이 야구에 재미를 더해주는 것 처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적절한 시프트를 사용 하는 것
역시.
우리 인생 이라는 게임에 흥미를 더해 주게 됩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더 짧다는 자각을 갖게 뎝니다.
이는 우리의 실존.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인식 입니다.
죽음 이라는 실존의 문제를
추상적인 관념 으로서가 아니라.
또렷한 감각과 인식으로.
생생하게 경험하게 하는 자각과 성찰 입니다.
비로소.
우리를 철들게 만드는 자각 이요 깨달음 이고.
내 피부 경계 안 쪽의
좁은 세계 에만 머물러 있었던 현상과 사물의 세계를 바라 보는 인식을.
자연과 우주.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와 철학.
삶 이란 무엇 이고?
죽음 이란 무엇 인가?
에 대하여 진지 하게 참된 의미에 대하여 의문과 답을 확장 시키는 인식의 결정적 전환이 되기도 합니다.
이같은 현상을 장자는
발상의 전환.
즉
''정저지와'' 라고 했습니다.
붓다 께서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물 바깥의 세상을 아무리 애기해 봐야 우물 안에 사는 개구리 에게는 그림의 떡 입니다.
우물 바깥 세상을 말 하려고 해도 들으려 하지도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아예 관심 조차도 없습니다.
우물 바깥 세상의 넓고 크고 무한함을 알수 없는 것 입니다.
우물 안의 세상이 전부 인양.
기존의 사고 방식과 고정관념에 틀에 박혀 사는 사람 에게는
참된 진리의 세계를 말 한다고 해도 관심도 없고 받아 들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우물안의 세상이 실제로 존재 하는 세상의 극히 작은 한 부분 인데도 말 입니다.
우물 안의 세상이 전부 인가?
여름 하루살이 벌레 에게
한 겨울 순백색 눈의 세계를
말 한다고 해도 이해 하지도 못하고 알아 듣지도 못 합니다.
우리네 중생 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세상적인 부귀영화.
돈과 재물.
명예와 권력.
육체적인 안락과 쾌락.
등이 인생의 전부 인양
오인 하고.
오해 하고.
착각 속에 사는 사람들 에게는.
깨달음의 지식과 지혜 속에 깃들어 있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 하고 무한한 영원불멸 하는
''참 나''의 세계를 모릅니다.
그런고로
이런 인식의 시프트와 함께.
우리의 심리 상태.
또한 근본적인 시프트를 경험 하게 뎝니다.
우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자각과 인식은
우리가 만나는 사람 들의 범위를 대폭 축소 하게 만듭니다.
스스로 에게 의미 있는
아주 친밀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적인 네트워크를 재 구성 하는 것 입니다.
만나는 사람의 수를 줄이는 대신. 소수의 사람 들과 깊이 있는 만남의 빈도를 늘립니다.
굳이 만날 필요가 없는 사람 들을 과감히 포기 합니다.
나를 싫어 하는 사람들.
만나면 기분 나쁜 사람들.
꼭 나갈 필요가 없는 모임 들에 대한 의무감도 사라 집니다.
이들 에게 ''미움 받는것''
이 인생에 큰 의미가 없다는 깨달음이 생겨 나는 것 입니다.
무릇.
"미움받을 용기"란
나이 들면 누구나 생기는
것 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자각은.
감정의 시프트도 만들어 냅니다.
모든 키스가 마지막 키스가 될 수 있음을 의식할 때.
우리 내면 에서 생겨나는 얽히고.
설키는 감정 들은.
젊은 날의 감정 과는 판이 하게 다릅니다.
즐거워도 마냥 즐거운 것이 아니고.
즐거움과 슬픔이 교차 하는 애뜻한 감정을 느낍니다.
어린아이를 쳐다 보는 젊은 부모의 눈빛은 즐거움과 기쁨과 사랑스러움 으로 가득 하지만.
장성한 자녀를 바라 보는 나이든 부모의 눈빛 에는 사랑 스러움과 함께 애틋함과 회한이
뒤 섞여 있습니다.
기뻐도 마냥 기뻐 하지만 않고.
슬퍼도 너무 슬퍼 하지도
않는 겁니다.
감정의 촉이 무뎌 져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의식이 나이에 따라
적절 하게 시프트를 구사 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오래 산 사람들의 감정은 매우 철학적 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은 우리를 작가의 관점 에서 삶을 바라 보게 하는
''관점의 시프트''
의 변화를 가져 옵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작가가 됩니다.
살아온 삶의 과정 속에 경험과 소재가 다양해 졌기 때문 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자각과 인식 생각은?
우리 삶의 무게 중심을
''재미'' 로 부터
''의미'' 로 옮기게 만듭니다.
나이가 들면 일상의 모든 행위 에서 의미를 발견 합니다.
세상에 우연 이란 없다고
믿게 되며.
지금의 나는 무한히 얽히고 설킨 사건과 인연 들을 통해.
존재 하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고.
(인과응보의 법칙.인연법)
실패 에서도.
깊은 깨달음의 교훈과 지혜를 발견 하게 됩니다.
그리 하여 비로소.
인생은 하나의 스토리 임을 깨닫게 됩니다.
자기 이야기를
''쓰고 싶다'' 는 생각은 어느새 자기 이야기를
''써야 한다'' 는 운명 으로 바뀝니다.
무심코 지나 쳤던 일상의
풍경 들이 정지 화면 처럼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천천히 인식 되기
시작 합니다.
지나간 과거에 얽매여 근심 하고 걱정 하기 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염려 하기 보다.
바로 지금 현재를 음미 하고.
소소한 즐거움을 발견 하는
''지금 여기''의
삶을 살아 지게 됩니다.
바로
''소욕지족''의 삶 입니다.
젊은 날.
그렇게 깨닫기 어려 웠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원리''
를 나이 들면서 자연 스럽게 깨달아 집니다.
나이 듦에 따라 변화 하는 타구의 방향을 정확히 포착 하여.
생각과 감정.
사유와 자기 성찰.
행동을 적절 하게 시프트 하는 인간 이란?
야구로 치면 귀신 같은 명 감독이 아닌가!
올 한 해 임인년도 시작이 엊그제 인 것 같은데.
벌써 열 두달이 지나 가고 있습니다.
이제.
제 나이도 이제
어느덧.
환갑을 넘기고 칠십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역시.
시프트가 일어 나야 할 시점 입니다.
정작 중요한 일과.
중요한 사람들 에게 온전히
집중 해야 할 시기 입니다.
결코.
중요 하지 않은 사람들 에게는 ''미움 받을 용기''
를 가져야 하는 시기 입니다.
그리고.
지금 까지 살아온 지나온 삶을 작가적인 관점 에서 스토리를
재 구성해 볼 시기 입니다.
잊어 버릴만 하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는 생각을 가질수 있도록
우리 들의 삶이 1년씩 구성 되었다는 사실이 이렇게
큰 축복일 수가 없습니다.
아니.
나에게 생명이 있다는 것 만 으로도 이렇게 감사 한 줄을 모르고 살아 왔으니.
이 얼마나 크나큰
어리석음 이었 던가 !
시간 이란 개념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무한 하고 영원한
것 입니다.
부처님 께서는 (금강경) 에서.
불생불멸 이요.
부증불감 이요.
불구부정 이요.
생사불이 요.
무시무종 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태어나는 것이 시작 이고.
죽는 것이 끝 이라고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 이라는 개념이 시작도 없고 끝도 없듯이.
우리네 삶도 역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것 입니다.
이 가르침을 믿지 않으니까 죽음이 두렵고 불안하고 초조한 것 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남아 있는 삶을 눈을 부릎뜨고 올바르게 살아야 하는 이유 입니다.
부처와 중생이 따로 따로
분리 되어 있지 않습니다.
중생이 부처요.
부처가 중생 입니다.
괴로움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어리석음과 고통의 노예로 사는사람은 중생 이요.
깨달음의 지혜로 항상 어디 에도 어느 것 에도 걸림이 없이 살아 가는 사람이 바로 부처 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삶과 죽음이 따로 따로 분리 되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 라는 것 입니다.
죽음이 삶의 종점이 아니라 죽음도 역시 삶의 한 과정 이요 연장 이라는 것 입니다.
삶이 곧 죽음 이요
죽음이 곧 삶 입니다.
지금의 결과는
반드시 원인이 있습니다.
이것이 (인과응보의 법칙) 입니다.
콩 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납니다.
''심는데로 거두리라''
는 변할 수도 없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영원불멸의 진리 입니다.
한번 태어난 존재는
반드시 죽습니다.
이 세상.
아니 우주에 존재 하는 그 무엇도 고정 되어 멈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끊임 없이 원인과 조건에 의해 변해 갑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라는 별도.
태양계도.
역시 광활한 우주의 빅뱅 에서 태어 났다고 천체 물리학자 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구로 부터 수십억 광년 떨어져 있는 우주 에서 빅뱅으로 인한 대 폭팔로 일어난 우주의 전자파를 과학자 들이 지상에서 발견 하는데 성공 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참으로 경이로운 일 입니다.
죽음학을 연구 하는 학자 들에 의하면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은 죽음을 준비해 나가는 하나의 과정 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죽을 때 일평생 동안 시간과 열정을 바쳐 이룩해 놓은 세상적인 모든 것은 두고 가지만.
다음 생의 원인(씨앗)이 되는 업(Karma)만 가지고 갑니다.
좌우도 뒤도 돌아 보지 않고
오직 앞 만 보고 쉼 없이 달려온 지난 삶의 과정 에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 밭에 무엇을 심어 왔는가?
늦었다고 생각할 때 늦은 것이 아니다 라는 자각과 성찰이 불가능한 것 인가!
이제 브레이크가 고장난 열차가 100km의 속도로 서로 앞 만 마주 보고 달려온 것 같이.
앞 만 보고 무한 질주한 지나온 삶을 되돌아 보고
그 기차 에서 뛰어
내려야 합니다.
이제 마음이 쉬어야 합니다
그 결단은 용기 있는 자 만이 할 수 있는 선택 입니다.
깨달음은 결단 이요 실천 입니다.
이 깨달음의 지혜가 오늘 바로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과 글을 쓰고 있는 저 에게 함께 일어 나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