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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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날씨 한번 좋다.
이렇게 좋은 날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작년에도 그전에도 이런 날은 수없이 많았는데
그때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강열한 태양 볕이지만 따갑지도 않고
옷을 벗든 입든 어떻게 하든 편안하다.
나무 그늘이 유난히 짙다.
매미는 이렇게 가는 여름이 아쉬운지 울음이 길게 늘여진다.
풀벌레 뀌뚜라미 소리 마구 섞여 여기저기서 찌찌 그린다.
바람결에 나뭇잎이 살랑거리니 가지도 일렁인다.
지나가는 이 없는 인적이 뜸한 조용한 오후다.
이 좋은 날 좋은 생각만 해야지 무슨 골치를 앓는가.
염치스런 양심이 꿈틀거리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다 말하자니 그렇고 참자니 답답하고
누구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정말 마음을 비우고 초가을 같은 날씨로 살고 싶은데
현실은 녹록치 않고 답은 보이지 않는다.
세상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나. 내가 그렇게 만들었나.
운명도 업보도 생각나고 나도 생각난다.
후회한다고 참는다고 될 일도 아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가 있다.
궁색하고 옹색하면 궁상 맞는데 이보다 더 답답할까.
그래도 참고 참고 가야지 어찌하겠는가.
아무리 좋고 옳아도 그게 전부가 아니며 막히면 돌아가라.
이심전심으로 통 할 거라 생각하면 착각이며
물러설 줄 모르는 옹고집과 집착은 피곤할 따름이다.
그러면서 망가지고 멍들어 간다.
내 마음도 내 맘대로 못하면서 뭐를 내게 맞추려고 하는가.
그냥 그렇게 한세상 살아 가려구려
찜찜하고 못마땅해도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이라네.
1년이 가고 10년이 가고 그리고 또 가면서
같은 계절이 반복되고 추석도 설도 수없이 지나간다.
그래도 내년이면 다시 오는데
우리네 인생은 한번가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있을 때 잘 해야 한다.
1년 전에 있었던 것도 없고 10년 전에 있었던 것은 더 찾기가 어렵다
100년이면 확실하게 물갈이하여 판을 바꾸어 놓는다.
그 판에 새겨진 자는 극소수이고 평범한 범부중이야 무슨 흔적이 있겠는가.
가을날처럼 활짝 갤 날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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