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불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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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에서 얼차례(기압) 받을 때 양심불량이라는 구호를 많이 외쳤다.
그때야 말로만 양심불량이지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은 없었는데
살면서 느끼는 양심불량은 무어라고 말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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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들어나지 않은 범죄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나쁜 짓을 하고도 나보다 더 한 놈도 있다며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뻔뻔스런 일도 많다.
정치는 상대와 비교하여 덜 나쁘다는 식의
비교 우위를 점하려는 한심한 작태도 있다.
상대가 차떼기면 나는 티코니까 선하다는 식의 웃지 못 할 코매디도 있다.
그래도 양심의 뭔가는 찔리는 것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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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짓 못 땐 짓을 하면서도 그것이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이익과 쾌락에 깊숙이 빠져들면 양심불량의 길을 간다.
범죄는 아니더라도 비도덕적 양심불량은 일상에서 자주 느낀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선량인 척 하는 자도 있고
바른 소리 하다가 되래 욕을 얻어먹기도 한다.
들어나지 않은 범죄 부도덕한 일은 양심만이 안다.
진짜 무서운 벌은 양심의 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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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도덕적으로 문제가 안 되지만
남들이 알면 부끄러워하는 일들 이것은 위신이고 체면인데
이는 사생활이기도 하기에 들어 내 놓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남들이 모르고 보이지 않지만 스스로 정갈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내 영혼이 정신이 맑아지며 기가 바로 선다.
이모든 것을 양심불량이라는 가마솥에 넣고 달달 볶으면
콩 틔듯 살아 있는 양심은 틔어 나올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 용광로는 항상 달아오르며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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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가 아니고서야 자유로울 수 없는 양심불량
좋은 학교 다녀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지고
높은 지위와 명예까지 얻었지만
수갑을 차고 철창신세를 지면서도 억울하다고 정의를 외친다.
선거 때는 잘한다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권좌에 오르고 나면 잊어버리는 망각의 양심
청문회 때 보면 편법은 기본이고
공사를 구분 못하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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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들어나는 세상풍경은 비 내려 깨끗이 씻겨주고
눈 내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추한 것 더러운 것 다 덮어 주지만
마음속에 차 있는 애고는 무엇으로 씻겨주고 덮어 줄까.
양심이 작동하면 부끄러운 일은 얼굴이 확끈거리고
범죄나 비도덕적인 것은 가슴이 찢어진다.
부부간에도 모르는 무덤까지 안고 가야 일들도
들어나지 않으니까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들어내어 다 좋은 건 만은 아닐 때도 있다.
벌 중에 가장 무겁고 엄중한 벌이 양심의 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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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편하게 살아가려면 살아있는 영혼이 맑아야 하는데
죽은 영혼만 찾으니 엉뚱한 생각을 하며 걱정도 많고 애고가 쌓여간다.
지난날의 양심불량의 일들을 가지고
무용담 늘어놓듯 침 튀기며 쏟아 내기도 하는데 씁쓸한 일이다.
성직자같이 살수는 없지만 부끄럽지 않게 산다는 것이 힘들다.
궁핍하고 정신 영혼이 피폐해지면 불량의 베짱이 두꺼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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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이 무엇이며 정의가 무엇이며
잘못되고 나쁜 것이 무엇인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다 알고 있으며 정답도 나와 있다.
순간적인 쾌락과 이익 독선과 망상으로 이를 망각하고
잘못된 길을 가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못 느낀다.
마음으로 지은 죄 는 영원히 들어나지 않지만
마음을 무겁게 하며 곧 행동으로 옮겨져
잘못된 길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버리고 비우고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이 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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