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정도.순리

77. 비광

초막 2025. 11. 27. 22:12

비광(화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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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치고 화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 화투는 일본에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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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화투속의 비광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는듯 하다.
'비광'속에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은 일본의 '무사'란 얘기도 있지만
전설적인 서예가인 오노도후(小野道風)란
실존인물이란 게 더 정확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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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일본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한석봉과 한석봉의 어머니처럼
교훈적인 미담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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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도후는 어려서부터 서예에 입문해서 열정적으로 공부를 했다.
그의 글솜씨는 빠른 속도로 발전해 나갔다.
자신의 글에서 살아있는 강렬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경지에 이르렀다고 만족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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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도 되겠지 하는
자만감에 차 있을 즈음에 그는 한 스승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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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스승이 보여 준 필법의 세계 앞에 그는 감명을 받았다.
스승의 필체를 자신의 필체와 비교해보니
그저 어린아이의 낙서 수준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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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동안 공들여 쓴 작품들을 모두 찢어버리고,
그 스승의 문하에서 들어가 피나는 노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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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글씨에 점점 더 깊은 맛이 배기 시작했지만,
스승은 칭찬 한마디 없이 항상 똑같은 말로 더 잘 써보라고만 했다.
'더 잘 써보라!' 그는 점점 의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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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스승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은 자신의 완성된 더 높은 경지를 스승 역시 모르는 것은 아닐까?
그런 부정적인 생각 속에서 결국, 그는 좌절하게 되었고,
더 잘 써라는 스승의 말은
자신의 부족한 한계를 돌려서 말한 것으로 생각해서
비관한 끝에 서예 공부를 그만두려고 결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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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 아침에 그는 짐을 쌌다.
자신이 한없이 처량해서 스승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짐을 등에 메고 우산을 쓰고 문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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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글씨에 쏟아 부은 시간이 얼마였던가!
그 고생을 하고서야 자신의 분수를 깨달았다는 아쉬움과 후회 속에서
고통스럽게 허비했던 그 간의 일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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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온갖 상념에 빠져서
집 앞의 버드나무 곁에서 우산을 쓰고 우두커니 서서
빗물이 홍수가 되어 흐르는 개천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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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그의 눈에 뭔가가 폴짝폴짝 뛰는 것이 보였다.
개구리 한 마리가 빗물이 불어 홍수가 일어난 개천 속의 바위 위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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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흙탕물에 휩쓸리면 개구리는 죽음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그 바위 위로 길게 뻗어있는 버드나무 가지를 잡으려고
필사적으로 뛰어오르기를 수십 번을 반복하고 있었지만,
가지가 너무 높아 아무래도 개구리가 붙잡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 개구리의 신세가 참 자신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너도 나처럼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고 있구나!
참 미련한 놈이라고 중얼거리며 불쌍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샌 바람이 불어 가지가
개구리 쪽으로 획하고 휘어져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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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그 찰나의 순간에 펄쩍 뛰어오른 개구리는
마침내 그 버드나무 가지를 붙잡는데 성공했다.
잠시 후 그 개구리는 버들가지를 타고
유유히 올라가 홍수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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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망연자실한 채 멍하니 그곳에 서 있다가
짐을 내려놓고 개구리 앞에 엎드려 큰절을 했다.
그는 개구리로부터 큰 깨우침을 얻고
다시 돌아가 스승에게 진심으로 고개를 숙여 용서를 구했고,
다시 초심으로 공부를 시작해서 일본 최고의 명인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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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 속의 비광 그림의 윗부분 검은 것이 버들가지이고,
가운데 파란 것이 개천, 왼쪽 아래 구석의 노란 것이 개구리다.
그리고 가운데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오노도후(小野道風)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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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좋은 사람보다 둔하지만
노력하는 사람에게 성공의 기회가 주어진다.
비광 속의 개구리는 꾸준히 노력하고 도전하는 사람은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모셔온 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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