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존오칙(共存五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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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세상은 남과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즉, 나와 남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말일 뿐,
아무리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도 자신을 탓할 때보다 옹호할 때가 더 많은
아전인수(我田引水)적 결론을 내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현실적 세상은 공존하는 세상이 아니라
아생연후(我生然後)의 세상인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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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먹이사슬부터 예외 없이 모두 아생연후의 먹이사슬이다.
늑대가 사슴을 잡아먹을 때 새끼냐, 다친 놈이냐, 출산이 임박한 암놈이냐를 구분하지 않는다.
오직 사냥하기 좋은 놈이냐 아니냐만 문제 삼을 뿐이다.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을 때도, 거미가 거미줄에 걸린 파리나 모기를 잡아먹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무자비하고 냉정한 자연계는 이상하게도 아름답고 다양한 동식물들이 공존하는 풍요로운 세상이다.
그렇게 무자비한 자연이 풍요롭고 아름다운 세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다음과 같은 “공존오칙(共存五則)”이 보장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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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 1칙: 먹고 먹히는 쌍방성(雙方性)이 보장되는 곳이다”.
자연의 먹이사슬은 일방적으로 먹히기만 하는 먹이사슬이 아니다.
반드시 먹고 먹히는 쌍방성을 가진 먹이사슬이다.
먹이사슬의 출발점인 플랑크톤은 작은 물고기와 작은 수중 벌레들에게 먹히고,
작은 물고기와 작은 수중 벌레들은 큰 물고기와 물새들에게 먹히고,
큰 물고기와 물새들은 곰이나 독수리들에게 먹힌다.
이렇게 먹히는 사슬의 정점에 있는 호랑이나 사자 등은
늙고 병들어 죽은 뒤 균류라는 분해자들에 의해 분해되어 땅속의 거름이 되고
식물들은 그 거름을 먹고 자란다.
먹고 먹히는 이런 먹이사슬에는 일방적인 승자도 패자도 없다.
동전의 앞뒤처럼 앞쪽으로는 승자가 되지만 뒤쪽으로는 패자가 되는 쌍방적 먹이사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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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 2칙: 천부적 자연 수명이라는 한시성(限時性)을 가진 곳이다.”
모든 동식물은 먹이사슬에 의해 먹히지 않더라도
하늘이 부여한 천부적 자연 수명을 다하면 반드시 죽는다.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는 하루 만에 죽고,
거북이는 200~300년을 살아도 결국 자연사하고,
북극고래 역시 250여 년을 살아도 결국 자연사하고,
사람도 100년이 못되어 자연사하고 만다.
자연 만물은 그런 한시성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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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 3칙: 일정한 환경을 벗어날 수 없는 국지성(局地性)이 있는 곳이다.”
육상동식물은 육지라는 환경을 벗어나 살 수 없고,
수상동식물은 수중이라는 환경을 벗어나 살 수 없다.
상어가 아무리 무서운 잇빨을 가지고 있어도 수중을 떠나서 살 수 없고,
사자가 아무리 용맹해도 밀림 속을 떠나서 살 수 없다.
그렇게 모든 동식물은 제한된 국지적 영역 내에서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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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 4칙: 암수가 만나 대를 이어가는 이원성(二元性)을 가진 곳이다.”
호랑이가 아무리 용맹해도 암수 혼자서는 대를 이어가며 존속할 수 없고,
물고기가 아무리 자유롭게 유영하며 다녀도 암수 혼자서는 대를 이어가며 존속할 수 없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남녀 간의 사랑과 증오가 겹쳐지며 지지고 볶고 해도
혼자서는 대를 이어가며 존속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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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 5칙: 수많은 동식물이 함께 살아가는 다양성(多樣性)이 보장되는 곳이다.”
인간은 식물이든 동물이든 인간 아닌 제3의 존재를 먹이로 하여 살아간다.
따라서 인간 아닌 제3의 존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무수한 동식물이 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제3의 동식물이 있어야 각각의 동식물이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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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보듯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은
쌍방성, 한시성, 국지성, 이원성, 다양성이라는 5성(五性)이 보장되는 곳에서만 공존할 수 있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5성(五性)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는 공존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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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최고목적은 모든 국민이 하늘이 부여한 천부적 인권을 누리며 공존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만백성이 인간답게 공존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의 “공존 5칙을 보장해야 한다.
일방적 결정이 아닌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쌍방성(雙方性),
개인은 천부적 자연 수명이라는 시간적 한계를 가진다는 한시성(限時性),
일정한 주변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간다는 국지성(局地性),
남녀는 동전의 앞뒤처럼 떨어질 수 없는 하나라는 이원성(二元性),
다양한 재주를 가지고 다양하게 사는 다양성(多樣性)이 보장되는 나라야말로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현실적 최고의 나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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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우리나라를 이끌어 가는 정치가들이여,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지식인, 지성인, 종교인들이여,
우리 국민들은 오늘도 위의 공존오칙(共存五則)이 보장되는 나라를 만들어 주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대들의 진짜 할 일이 무엇이고, 진짜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
제발 바로 보고 바로 가길 두 손 모아 빌고 있다.
손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