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로(旅路)
/
70년대 초고의 드라마 걸작 “여로(旅路)‘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생활상을 리얼하게 엮어내면서
저녁 시간대에 많은 사람들을 흑백 T.V앞에 붙들어 매워 두었지요.
그때 스타가 된 명 연기자들도 하나둘 저 세상으로 떠나가면서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 되어갑니다.
/
경부선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려가노라면
차창 밖으로 온갖 풍경들이 스쳐지나갑니다.
기차는 똑바로 일직선상으로 가는 것 같은데
바닥을 내려다보면 더 더욱 굴곡지거나 휘어져 가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높은 곳 멀리서 내려다보면 주요 거점 도시를 거쳐 가면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험하고 커다란 지형지물은 돌아가고
바로 앞산은 굴을 뚫고 강은 다리를 놓아 달려가게 합니다.
이렇게 높은 곳 멀리서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휘어지고 펴지면서 많은 굴곡이 있습니다.
다행스런 것은 직각으로 겪여지지 않아 무사히 갈수 있습니다.
/
인생여정 또한 지나온 길 돌아보면 나는 바르게 살아온 것 같지만
여러 거점(고비)을 거치면서 여기저기 휘어지고 굴곡진 곡이 있습니다.
바로 앞 내 밑바닥만 보고 살아간다면
내 삶의 이런 굴곡진 부분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지나고 보니 당시에는 이겼는데 진 것이 된 것도 있고
그때는 졌지만 참 잘한 것이고 이긴 것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세월 가니 승패의 명암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바뀔 수 있는데
어느 한 부분 곁가지만 떼어내어서 단편적으로 속단하기에는
아직은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았습니다.
/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러한 경우도 있고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그러하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만족보다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 세상살이인가 봅니다.
굴곡진 삶을 사드라도 경부선 철도처럼 완만하게 휘어졌다 펴졌다 하여야
어려운 난간을 헤쳐나 갈 수 있습니다.
내 고집과 아집에 갇혀 안으로만 휘어지면
언젠가는 부러지고 탈선하면서 중도하차는 여행길이 되지요
경부선 철도가 주요거점 도시를 거쳐 가려고 휘어졌다 펴졌다하는 것처럼
삶 또한 중간 중간 여러 난간을 헤쳐가려면 그러해야 하나 봅니다.
/
최고의 권력에 오르는 청문회장에서 화려한 경력 못지않게
지난날의 부끄러운 자화상은 우리사회를 우울하게 만들지요
역지사지라고 내가 저 처지였다면 어떠했을까 어쩌면 더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 하고 싶은 말이라고 다하는 게 아니고
그 말 다하면 누구와도 어울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부간에도 무덤까지 가져가야할 비밀이 있고
부모자식 간에도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한계를 넘어서다 보니 아주 가까운 사이지만 칼부림이 일어나고
헤어지기도 하면서 남만도 못한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
내일이 없는 하루살이 불나방이 모답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면서
1년이 길 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인데
100여년의 세월을 한 자락 꿈에 비유하는 것은 곧 내 욕심이겠지요.
하루살이 불나방이나 100여년을 살아가는 자나
이 시간의 소중함과 지나고 나서 남는 것은 같습니다.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관건이겠지요.
/
공동사회의 법과 제도 규범은 하나 더하기 하는 둘 둘 곱하기 둘은 넷이지만
삶이란 하나더하기 하나가 열이 되기도 하고 백이 되기도 하고
둘 곱하기 둘은 천이되기도 하고 만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요지경 같은 세상의 상거래는 수학공식처럼 틀에 박혀 타이트하고
법과 제도가 있기에 우리사회를 지탱하면서 지키지 않으면 처벌을 받습니다.
그러나 삶은 내 마음 먹기에 따라 요술도 부리고 마술도 부리나 봅니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는 코 찔찔 흘리면서 누구나 같은 선상에서 출발하였지만
위로 올라 갈수록 차츰 격차가 벌어져 다른 길을 가기도 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누구는 높은 지위에 오르고 누구는 그렇지 못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은 천태만상입니다.
/
그러나 이것도 잠시 50대 후반 정점을 찍고 환갑을 넘기고 나면
다 같이 늙어가는 주제에 60대부터는 외모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으며
70대가 되면 많이 배우고 덜 배우고의 학력의 차이도 별 의미가 없고
80대면 골골하면서 체력이 쇠약해져 건강의 평균화도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90대면 돈 쓸 능력이 없어 부의 평균화도 일어나고
100세를 넘어가면 산에 누운자나 집안에 누운 자나 역할의 차이가 없습니다.
이렇게 마지막 종착역으로 갈수록 초등학교 1년학년 때처럼
같은 출발선상으로 돌아가 평균화가 됩니다.
이것이 삶의 여행길 旅路(여로)입니다.
/
旅路(여로)의 뜻은 “여행하는 길. 또는 나그네가 가는 길”인데
살아간다는 것은 나그네가 되어 삶의 여행길을 가는 것이지요.
여행길은 즐겁고 기뻐야 하는데
불가에서는 삶 자체가 고행이고 수행이여야 한다고 했거늘
이 무슨 상반된 이야기를 하는지 ??
그러면서 ‘편하게 살려고 하지 말라“라는 충고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