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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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물꾸물하고 하늘이 나지막하게 깔려 저압이면
모든 소리가 선명하게 크게 들려온다.
기분이 저기압이면 눈꺼풀이 아래로 깔리고
주변 하찮은 이야기가 크게 들려 마음에 거슬린다.
저기압일 때는 조용히 있어야 한다.
양탄자 깔아 놓은듯 길바닥에 우수수 떨어진 낙엽
함박눈이라도 펑펑 내린다면 낭만의 절정일 텐데
요런 방정맞은 소리 하다간 가을한테 혼이 난다.
벌써 잎사귀 다 떨구고 올라당 벗은 나목이 있다.
나무에 붙어 있을 땐 단풍이라고 불렀는데
땅에 떨어지면 낙엽으로 이름이 바뀐다.
새싹으로 돋아나 귀여움받다가
검푸른 잎사귀 되어 위용을 뽐내다가
울그락 불그락 그 위용이 절정에 달하지만
어는 날 한 줄기 바람에 추풍낙엽 되고 나면
힘없이 어리저리 바람에 끌려다니다가
빗자루 질 한방에 꼼작 못하고 쓸여 간다.
추풍낙엽 얼마나 맥없이 떨어지면
허무하게 질 때를 추풍낙엽이라 하나.
추풍낙엽 밟고 지나가노라면 많은 생각이 난다.
바스락 그리는 소리 궁상맞은 생각은 하지 말자
그래도 가을이라 궁상맞은 생각이 밀려온다.
이렇게 몇 날 며칠이고 밟고 지나다니면
가루가 되어 바로 쓰레기장으로 간다.
가을비 뿌리고 나면 단풍잎 우수수 떨어져
여기저기 나목이 생겨난다.
정말 쓸쓸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가을비가 청승맞은가 보다.
무슨 갈 길이 바빠 옷 홀라당 벗고
나목으로 서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가.
건너편 양지 바른 곳은 검푸른 위용을 뽐내며
아직 단풍들 생각도 하지 않는데.
하기야 먼저 가나 늦게 가나 50보 100보다.
그러니 나목도 그런대로 봐주자.
나목으로 먼저 가 자리 잡고 있다가
내년 봄 새싹의 움은 먼저 틔우거라.
해는 어느새 서산으로 넘어가고 어둠이 깔린다.
어둠 속에 묻히니 나무에 붙어 있는 잎사귀나
바닥에 나뒹구는 잎사귀나 그 빛깔이 그 빛깔이다
잎 다 떨어진 나목이나 화려한 단풍으로 치장한 나무나
그 나무가 그 나무다.
잠시 후면 어둠 속으로 사라질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