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글

17.회자정리

초막 2010. 3. 14. 16:01
(아들 훈련받는 신병교육대 게시판에 올린 글)

 

 

회자정리

 

11월2일(입영일)의 감회가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후배기수도 들어오고 훈련도 벌써 중반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아직도”라고 생각하시분도 계시겠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군생활 반은 한 것 같기도 하구

한편으로는 까마득한 것 같기도 한데

다 부질없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만나면 반드시 해어진다고 35일간의 열전이 끝나면

병사들도 뿔뿌리 소속부대 배치 받아 헛트질 것이고

여기 게시판의 열기도 식고 까페를 떠나시는 분들도 많을 텐데

그 쓸쓸함은 후배기수들이 우리와 같이 다시 달구어 주겠지요

그러나 보내는 사람이나 떠나는 사람이나 그리움은 남을 것입니다

 

많은 장병들이 거처 간 00사단 신병교육대

우리 21기생들은 어떤 기억을 남겨 놓을지

좀 까다롭고 별나다고 생각 들지는 않을는지??

아직도 아침저녁으로 눈물짓는 가족들이 계십니까

입영일로부터 점점 멀어질수록 잠잠해 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참 간사하며

어떤 유행가 가사처럼 세월이 약인가 봅니다

 

낙엽이 지고나면 21기생 신병새내기라는 이름도 지고

나무에는 앙상한 가지가 남지만

21기생 새내기에게는 튼튼한 작대기(가지) 하나가 얻어 집니다

내년 봄 꽃피고 새 울고 앙상한 가지에 울창한 녹음이 짙어지면

21기생이등병 모자에도 튼튼한 작대기(가지)하나 더 얻어 집니다

그러나 이날이 오기까지는 건너야 할 강도 넘어야 할 산도 많은데

앞으로 닥쳐올 추위를 생각하면

가을이 깊어질수록 부모님들의 시럼도 깊어질 것입니다

 

위문편지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우리아들 누구 누구야 “밥은 잘 먹고 있니” “춥지는 않니“

”아픈데는 없니“”보고싶다“ 등등 구구절절한 사연도 많습니다

그러면서 중대장님 소대장님 조교님 불러보지만

대답은 없고(일일이 답변해 줄 수 는 없겠죠)

우리아들 누구누구 잘 좀 보살펴 달라는 간곡한 말들도 많은데

어쩌면 군대이니까 다 부질없는 이야기이고

소용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겠지만

간절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절박한 말들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게시 글대로 우리아들에게만 그렇게 해도 안 되고

그렇게 되지도 않겠지요

아무나 군에 간 것도 아니고

갈만한 자격이 있어 군에 간 사람들이니

잘 짜여 진 각본대로 잘 적응하리라 믿습니다

 

몇주전 입영할 때 흘렸던 눈물은 분노의 눈물도 슬픔의 눈물도 아닌

아주 고귀한 그리움의 눈물 이였던 것 같습니다

무엇이 그리도 그리웠던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오래도록 해어져 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지

특별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 그리움이 크다보니 아픔으로 다가 오기도 하였습니다

 

지난날 선거때만 되면 병력문제를 들고 나왔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확실히 알았습니다

11월2일(입영일)의 마음이라면

여기에 지피는 불은 어떤 휘발유 기름보다도 강열하게 타 오를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병역문제를 정치적으로 들고 나오고

국회청문회 때는 그 좋은 대학 나오고 잘난 사람들이

병력문제로 쩔쩔 매는 것을 보면

한때 잘못된 생각이 평생을 따라다니며 후회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군에 다녀온 흔적은 평생 따라다니는 보증수표가 될 텐데

그 보증수표의 첫 단계인 신병교육대 훈련소는 감회어린 곳이 될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지난날 군에서 가끔 일어나는 불행한 뉴스를 접 했을 때

군에 보낸 부모의 가슴은 덜컹 덜컹 내려앉았을 것입니다

내 자식 군에 보낸 마음도 이러한데

그런 일 중심에 서 있었던 그 부모의 심정은 어떠했을꼬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찡해 옵니다

 

그러나 군에 간 자식에게 너무 집착하면

군에는 자식이 가 있는데 군생활(마음고생)은 부모가 합니다

이러 저러한 일들을 생각하면

내 자식만 생각해서 눈물만 흘릴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주위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군대 갔다 오면 어른스러워 진다고 하는데

우리 아들에겐 아직은 먼 딴나라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군복입고 휴가 나오면 내 생각이 좀 바뀌어 질는지??

 

나라의 안보를 책임지는 곳이 군인데

좋은 일도 있겠지만 힘들고 위험하고 궂은일이 왜 없겠습니까

이런 곳에 피 끓는 20대 젊은 청년들이 모여 있습니다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르는 고삐 없는 망아지 같은데

이러한 남의 자식들을 훈련시키고 돌보아야 할 군지휘관들

부모님들만큼이나 혹시나 혹시나 하시며...........

노심초사 속 끓이고 애 태우시겠지요

 

사람다루고 관리하는 것 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는데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읽어보면

어디 잠이나 제대로 주무시겠습니까

2006년 가을도 서서히 저물어 가고

00사단 신병교육대 21기 수료식도 서서히 다가옵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시기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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