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의.식.주
의식주(衣食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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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데 기본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사람다운 생활 삶을 누리며 행복을 느낀다
보릿고개를 직접 겪어보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얼마나 배가고파 보리가 익기도전 베어 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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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전쟁후 황폐화된 산하 온전한게 있었을까
미국 원조 강냉이가루 우유가루 배급도 받고
강냉이죽 학교급식 먹을때 구수한 맛 잊지 못하여
집에 동생 주려고 도시락에 남겨가는 친구도 있었는데
등교시 빈도시락에 반찬은 종이에 싼 소금, 주머니에 넣고
죽 끓일 장작 3-4개 동겨맨 걸망태 지고 뛰어 가노라면
아침부터 도시락 덜커덩 거리는 소리 요란했는데
지금의 학교급식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며
그때나 지금이나 무상급식이지만 격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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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가 없으니 장래쌀이라 하여
부자집에서 쌀1가마 몇말을 꾸어서 먹고
농사지어 가을에 이자(5할)와 원금 갚고 나면
가난의 악순환은 반복되어 가난 벗어날 길 없어
입 하나라도 들기 위해 식모 머슴으로 가고
절에 중(스님)으로도 가고
아예 학교를 다니지 않고 그렇게 가기도 하며
이렇게 곤궁한 가난, 식량을 아끼려고
국수도 해 먹고, 쑥을 떠드 밀가루에 묻혀 먹고
머루 다래 고사리 다래순 산나물 채취해 먹고
칡뿌리 케 먹고, 소나무 껍질 송구도 벗껴 먹고,
이렇게 먹거라 부족하여 실컨 못 먹어
입에 풀칠 한다는 말이 이때 생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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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잔치 결혼 회갑 장례등 큰일이 있으면
온 가족이 가서 일 도와주고 며칠을 먹고 지내며
품앗이 남의집 일하려 가면
아이들도 점심때 밥 얻어 먹어려고
주변 근처를 어설렁 기웃 거렸는데
도시 농촌 할것 없이 거리에는
상군경과 걸인들로 넘쳐났으며
도시 변방에는 걸인들이 집단으로 모여 살며
고물 폐지등을 주워 파는 능마주의자도 많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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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게 이러니 입는 거도 형편 없었지요
옷이나 양발 기워서 입는 건 다반사고
큰옷 줄여서 입거나 형.언니 옷 동생이 물려입고
교과서도 그렇게 물려받아 공부했는데
학용품 궁하기야 말해 무엇하리오
호롱불 밑 공부는 한참 수준이 떨어져
3-4학년 되어도 한글도 뜨듬거렸고
졸업을 했지만 한글이 자유롭지 못 하였는데
중학교는 가뭄에 콩나듯 두서너명 진학하고
입시를 보니 시골에서 상급학교 진학은 어려웠고
남녀 차별이 심하여 여학생은 더 힘들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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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입는 게 이러했으니 주거 생활은
셋방살이 방 하나에 온 식구들이 기거하고
큰 이불 하나 펴면 전부 같은 이불속에서 자고
동생들도 많고 동생 돌보랴 잡일도 많았지요
지금의 아이들은 뭔 야기인지 상상이 안 가지만
5-60년대 대한민국 풍상(경)이며
70년대 초반까지도 이러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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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먹는 거는 국가에서 보호해 주고
도시는 무료 급식하는 단체도 있으며
옷 기워 입는 사람들 없으며, 헌옷 재활용품 넘쳐나
버려지는 음식물 의복등은 너무 많지요
쌀값 싸다고 수확도 안하고 갈아 엎는 것 보면
가슴이 아프고, 옛날 보릿고개 시절이 생각나지요
이런 가난 극복한 조상들은 얼마나 고생하셨으며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새마을운동
여기에 걸출한 지도자 박정희가 있었는데
유신 같은 독재 잘못한 과업도 있지만
공적 또한 엄청 많기에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박정희를 잊지 못하고 국민들 민족의 영웅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