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과 추억

107. 아련한 향수(100년전)

초막 2021. 11. 6. 16:12

아련한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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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이맘때?
고향에는 학교가 하나도 없었는데
지금은 보시다시피 학교는 넘쳐나지요.
100년 후는 어떻게 될까요?
지금과 같은 인구감소 추세라면
학교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거 같으나
그러나 그렇지 않을 거 같고
그때까지 아무도 모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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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붐(55년-63년생) 세대가 학교 다니던 6-80년대
그때 그 시절 고향풍경
당시 거리(길)마다 학생들로 꽉 차서
북쇠통을 이루어 학교가는 방향이 다르면
길 가다가 서로 엉키기도 하였으며
기차통학 버스통학 자전거통학 하숙생 자취생 등등
학교 다니는 방법도 다양하였으며
학교가 적어, 중학교 과정을 다루는
고등공민학교 기술학교도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네요.
무시험이 시행된 71년(첫학년) 이전에는
외지에서 모여드는 학생들도 많아
기차 통학생들은 역광장에서 모여
통학반장 인솔하에 줄지어서 학교에 갔지요,
중학교 무시험으로 입학하던 때는
한 반에 70명이 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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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급격히 불어나는 인구억제 대책으로
70년대 말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켐페인을 벌였으며
읍면 보건지소마다 가족계획 담당은 피임을 홍보했고
예비군훈련 가면 가족계획 교육을 받고
정관수술 하는 자는 훈련면제 귀가하였는데.
지금은 인구도 학생도 급격히 감소하여 폐교가 속출하고
아이를 낳지 않아 출산장려금을 주고
인구증가 책을 펴지만 좀처럼 불어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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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불어나는 인구로
당시 시골로 가는 버스는 미어터지고
장날은 사람들로 그야말로 인산인해였지요
지금 대도시의 먹자골목이 유명세를 타지만,
당시 시장통 역주변 골목마다
음식점과 막걸리 선술집으로 넘쳐났으며
장날은 업소마다 손님들로 꽉 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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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십년전 어제 일 같은데
이제는 까마득한 옛날 야기가 되어
지금 학생들은 상상도 이해도 안 가는
전설적인 야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