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부처님 법이란?
??부처님 법이란?
1. 해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전 세계 종교 가운데 당신의 가르침을 해석하라고 가르친 분은 부처님 밖에 없습니다.
다른 종교의 경우 맹목적인 믿음만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또 그 가르침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은 신에 대한 배반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불교는 공부했다면 해석하지 않으면 어리석어 진다고 가르치고있습니다.
또, 부처님께서는《열반경》에서 “모르는 자가 행동만 앞세우면 맹목적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자는 절대 무식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2. 불법을 알고 해석했다면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불교의 근본은 자비입니다,
자비를 실천하지 않으면 무자비 (無慈悲)해집니다.
남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 자비 입니다.
모든 생명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자비입니다.
이같은 이치를 알았으면 행동으로 옮기라는 것입니다
. 《능엄경》에 “알고 행하지 않으면 무식한 자와 같다”고 했습니다.
마치 배고픈 사람이 음식 만드는 법을 안다고 해서
배고픈 것이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직접 음식을 먹어야 배고픔이 해결됩니다.
3. 증입니다. 스스로 얻으라는 뜻입니다.
물이 찬 것은 마셔본 이가 알고, 음식은 먹어봐야 그 맛을 알 수 있듯이
남의 깨달음이란 남이 음식을 먹었던 이야기를 들은 것 밖에 안 됩니다.
내가 스스로 실천해서 결코 깨닫지 못하면
팔만대장경을 다 읽어봐도 음식 먹은 설명을 이해 하는 정도밖에 안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자비심이 일어나면 내 마음이 관세음보살이라.
기쁨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면 그 마음이 곧 대세지보살임을 명심하십시오.
또한 이 세상에서 만족을 아는 사람이 제일 부자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만족할 줄 모르면 가난한 자이고,
비록 적게 가졌다 할지라도 만족할 줄 알면 그가 제일 부자라고 했습니다.
만족이야말로 최상의 부자입니다.
온 세상을 금 덩어리로 만들어서 한 사람에게 모두 주어도
그 한 사람의 욕심을 채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욕심으로써 결코 만족을 얻을 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스승과 제자가 나란히 길을 가는데 길가에 금 덩어리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제자가 금 덩어리를 보고 욕심이 생겨서
챙겨가자고 말했더니 스승이 “그게 무슨 금 덩어리냐,
근심 덩어리다”라며 다그쳤습니다.
스승의 만류에도 제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금 덩어리를 챙겼습니다.
중국 상서에 보면 “주변을 자꾸 돌아보면 투심(偸心)이 있다”고 했습니다.
남의 것을 훔치면 꼭 두리번거리게 돼 있습니다.
제자가 스승에게 “빨리 가십시다. 꼭 도둑놈이 나올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자
스승은 제자에게 “네가 몸에 금 덩어리를 지니지 않았을 때는
너와 내 마음이 편안했지만 마음이 불안해진 이유는 네가 몸에 금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니 금 덩어리를 땅에 내려놓으라.”고 다그쳤습니다.
물질로서 욕망을 채우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땅에 누워도 행복하지만
만족할줄 모르는 이는 천상에 있어도 편안할 수 없어"
부처님께서는 “만족이야말로 가장 으뜸가는 부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맨 땅에 누워 있어도 행복하지만,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천상에 있더라도 마음이 편안해 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 이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보기엔 건강한 것보다 큰 이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건강은 한번 놓쳐 버리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후회하고,
젊음이 지나면 후회하듯 현실에서는 그 소중함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 시절 그 아름다움을 알았더라면 건강도 잘 지켰을 거라고 후회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도 “세상에 제일가는 이익은 건강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육신이라는 몸에 의지하기 때문에 몸이 병들면 마음도 병들기 때문입니다.
육신이 소중해서가 아니라 소중한 마음을 지키기 위해 몸이 건강해야 합니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을 온전히 지킬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남에게 기쁨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대학에서 좋은 가르침을 받아서 부처님 법을 열심히 배우고,
여러분들의 배움이 사바세계를 비추는 빛이 돼서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과 같이
복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부처님 법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참 불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스님의 말씀을 재편집하다)
시인 태공 이주수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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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해진 누더기를 걸치고
여위어 앙상하게 힘줄이 드러나 있고
홀로 숲 속에서 명상에 깊이 잠겨 있는 이
그를 나는 수행자라 부른다
/
被服弊惡 躬承法行 閑居思惟 是謂梵志.
피복폐악 궁승법행 한거사유 시위범지
/
Him I call a Brahmin who wears cast-off garments,
lean, spread over with veins, solitary,
and who practises meditation in the forest"
/
내가 브라만이라 부르는 그는 버려진 의복을 입고 있는데
여위고, 정맥으로 뒤덮여, 외로운 사람인데
숲속에서 명상을 연습하고 있다
(모셔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