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영구차/
영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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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나서는데 검은 리본띠를 차창 앞에 두르고
영정을 모신 승용차가 신호대기로 서있다.
그 뒤에 조그마한 영구차 1대만 따른다.
그 흔한 화환도 없고 사람도 별로 없는 것을 보니
어렵게 살아가는 평범한 서민 같다.
유명세 타는 높은 집안이라면
대형 버스에 많은 화한에 삑까번쩍 한 검은 승용차가 즐비할 텐데
그러나 그것은 산자의 호기[豪氣]일 뿐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다 부질없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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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지 모르지만 오늘도 저렇게 단촐하게 이승을 떠나간다.
어쩌면 길거리에서 우리와 마주친 사람일지 모르는데
영구차안 가족들 몇몇만 슬퍼하지 세상은 별 관심이 없다.
오늘이 가고 내일이 가고 그리고 또 내일이 가다보면
가족들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기야 그렇게 해야지 언제까지 슬퍼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러니 죽은 자만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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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떠나갈 것을 평상시에는 어떻게 살았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어떻게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이리 저리 생각하면 거슬리는 것도 있을 것이고
우매 목매한 날들을 후회할 것 같다.
제대로 마음 열어 놓고 주변을 챙기며 살았다면
떠나갈 때 떠나 가드라도 아쉬움이 덜할 것인데.
이런 저런 사유(체면)로 감추고 숨죽여 온 날이 더 많을 것이다
유행가 가사처럼 언제한번 소리 내어 울어 볼 날이 온다면
그날이 바로 오늘이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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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수명이 길어져 100세를 넘보는데
예전에는 보통 80을 넘기면 천수를 누렸고 호상(好喪)이라고 한다.
죽고 보니 집밖이 저승길이라는 회심곡의 노래 가사 말처럼
60을 넘어서면 80도 문전 앞 가시거리다.
감기한번 독감한번 잘못 걸려도 밤새 안녕할 수 있다.
지금 나이를 생각하면 세상을 따지고 말고 할 것이 없다.
이런 생각을 하니 조금은 여유롭고 풍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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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 입구에서 장애인이 트럼펫을 구슬프게 연주한다.
1000원 짜리 한 장식을 두고 가는 등산객의 마음
ARS자동전화로 사랑의 리케스트에 1000원 기부하는 마음
T.V에 나와서 인터뷰 하고 성금 내는 것도 용기고 미덕이지만
생색 내지 않고 이런 남모르는 작은 정성도 보시중 보시다.
성경 불경 줄줄 외우고
헌금 시주 많이 하는 것이 다는 아니다
아침나절에 본 영구차가 나의 생각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