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고

66. 모두 내것

초막 2014. 2. 19. 12:14

모두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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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내 업장 내가 짊어지고 가는데

무겁다고 하소연 한들 누가 덥석 받아주겠는가.

말하여 들어내지 않아도 나는 내가 잘 아는데

염치가 있고 양심이 살아 있어

나를 속이는 것 보다 더 괴로운 것이 없다.

세상사 마음 씀씀이에 따라 꼬였다 풀렸다하며

세상 이치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깨닫는다면

살아가는 것이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닌데

나에게 내가 갇혀 있기에 인간사 번뇌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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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키지 않는 것도 나요, 바라고 기대하는 것도 나요,

내 마음 안에 내 아닌 것이 어디 있으랴.

세상의 흉허물 못 볼 것 안 볼 것 다 보면서 내숭 떨었지만

그것이 내게로 돌아 올 줄 알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흉허물 다 파헤쳐진다면 세상 사람들 기절촉풍 할 것인데

모르니까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이것이 들어나지 않은 세상풍경이고 내 모습일 수도 있다.

생각하면 속이 뒤집어지지만 운명이라면 어찌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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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리대로 운명대로 가자면 속상하고 화나며 심기가 불편해도

참아야 하는데 알면 참는다는 게 정말 괴롭다.

그래도 참아야 할 운명이라면 참아야 하고

때로는 옳고 그럼 정의가 통하지 않을 때가 있으나

그래도 또 참아야 한다.

이것이 업장소멸 하는 것이다.

어떤 특수한 상황이 아닌데 일상에서 절제하며

나를 다스린다는 것은 참는데 한계가 있다.

그 한계가 됨됨이 인품의 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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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목숨만 유지할 정도로 하루하루 한 두 끼만 먹고

편안함을 멀리하며 절제된 생활로 고행의 길을 가는

수도승은 무엇을 얻으려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갈까.

깨달음이라는 내면의 희열이 있을 것이다.

일반 범부중생들이 어찌 왈가불가 논할 수 있겠는가.

나를 내려놓고 버리면 무슨 욕심 두려움 걱정 불안할 것이 있겠는가.

그것은 꼭 죽음이 아니더라도 죽음보다 더 처절한

나의 수행(참음)의 길을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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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에서 느껴지는 깨달음의 희열 느껴본 자만이 알 것이며

그 어떤 기쁨과 비교가 되겠는가.

이것이 도인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다.

누가 알아주는 이 없어도 내안의 도인으로 살면

작지만 깨달음의 희열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