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체면/
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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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전 날씨가 을씨년스럽게 추운 날 저녁에 외출을 했다.
인도 위 길바닥에 하얀 종이에 싸인 호두알 크기만 한 고급 빵이
투병한 비닐봉지에 담겨져 몇 개만 꺼내어먹고 그대로 떨어져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주워가는 사람은 없었으며
나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스쳐지나 갔다.
볼일을 보고 다시 거기로 돌아오는데
빵은 다행히 아무도 밟지 않아 그대로여서
용기를 내어 체면불구하고 빵봉지를 집어 얼런 주머니 속으로 넣는데
도둑질 하는 것도 아닌데 얼굴이 얼마나 화끈 거리든지
자존심도 체면도 다 구겨지는 것 같았다.
밤 시간대라 사람들이 잘 알아보지는 못하는 것 같아
그나마 체면을 덜 구긴 것 같다는 생각이 덜었다.
집에 와서 빵을 먹어 보니 너무 맛있던데
내가 안주었으면 다음날 청소 빗자루에 쓸려 쓰레기 되었을 텐데
체면이 뭐길레 자존심이 뭐길레 잘 다스리면 편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바닥의 떨어진 빵 한조각도 생각에 따라 이렇게 운명이 갈릴 수 있는데
일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 마음에 따라 얼마나 운명이 갈릴까
음식을 먹다가 흘릴 수도 있는데 혼자이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주워 먹기도 한다.
그러나 누가 보고 있으면 능청을 떨며 그대로 버린다.
위생적이지 못한 것 먹어서는 아니 되지만
그것 먹고 이상이 있다면 건강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음식을 먹었지만 탈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다.
육체적인 건강도 마음의 체면과 자존심도 적절히 잘 관리해야 한다.
체면과 자존심에 목숨 거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게 하여 불행해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요즘은 웰빙시대 육체적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도 중요시 된다
내려놓아라, 버려라 비워라 하는데 그 큰 뜻을 잘은 모르지만
당당하게 현실적으로 살아가라는 말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