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팔자/
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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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감사해 하고 고마워해야 하는 가
이렇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그리고 숨 쉬고 있다면 고마워해야 할까.
배고픔을 느끼고 아픔을 느끼고 고독을 느낀다면
느낀다는 자체로 살아있음에 감사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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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불편하고 답답한 것은 그 다음 문제이고
당장 숨넘어가는데 무슨 생각이 더 날까
그러고 보면 평범한 지금이 행복인데
이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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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생각하기는 쉽지 않고
머리로는 생각해도 마음으로 깨닫기는 더 어렵다.
겸손하면 감사해 할 줄 아는데
내 잘났다고 시건방을 떨다가 불행해져 정신을 차리지만
깨어지고 무너지고 버스는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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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을 주는 지혜로운 글들은 넘쳐나는데
그중 어느 하나라도 마음에 제대로 새겼다면
지금의 궁상은 없을 텐데
마음 아프게 하는 것도 화나게 하는 것도 가까이 있으며
생각하면 참 속상하지만 그래도 참아야 한다.
내 잘나고 든든하면 이렇게 청승맞게 살지 않을 텐데
내 부족하고 못나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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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도 다 부질없는 것인데 그래도 생각이 난다.
그래, 그래 살다보면 무슨 구체가 나겠지
참지 못하는 성질머리가 더 문제다.
말 못할 사정 내게만 있을까. 다른 사람들도 다 있는데
남의 떡이 더 좋게 보이고
남의 아픔이 커도 내 손톱 밑에 가시만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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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후회하며 느끼는데 그 묘미가 있다.
그렇지 못하면 불행이고 더 힘들어 진다.
운명이 무엇인지 팔자가 무엇인지
내 못난 것을 감추는 말인데
운명이라면 운명 따라 가야하고
팔자라면 팔자대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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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산 팔자요
누구는 물 팔자인데
나는 내 팔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