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글

60.양비(시)론/

초막 2012. 11. 6. 15:53

 

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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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이 생겨 다툴 때 서로 자기주장만 내세운다.

하지만 내 주장이 아무리 옳아도 먹혀들지 않고

공방만 오고가다가 싸움은 더 크게 번진다.

내 주장이 관철되어 상대를 이해시키려면

나의 잘못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상대도 잘못을 인정하고 수긍을 한다.

꽉 조인 허리띠 한 클릭만 물리면 숨쉬기 편한데

한 클릭을 더 조이려고 하면 허리 끊어질 듯 아픈 이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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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 치우치면 자기를 돌아보는 이성을 잃어 화를 더 키운다.

정치가 비난받는 것도 서로의 잘잘못은 또길 갯길 같은데

자기의 치부는 감추고 공격만하니 험악해지고 영원한 평행선을 달린다.

토론할 때 양비론을 펼치면 우유부단 줏대 없다고 하는데

하지만 잘 들어보면 어느 편에 서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감이 온다.

직설적으로 어느 한쪽편만 들면

아무리 진실 된 말을 해도 그 본질이 훼손되고 공정하지 못하고

적으로 취급되어 상대를 이해시키기는 더 힘들어 진다.

양비론을 균형 있게 잘 맞추며

자기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잘 펼쳐야 유명한 논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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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잘못(모순)도 인정할 줄 아는 양비론 자가 양심적이다.

존경받는 지도자 신뢰받는 사람이 되려면

인정할 것은 인정하며 세상을 말해야 한다.

즉 자신을 먼저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소인배는 남 탓 핑계를 먼저 내세우지만

큰 인물은 자기를 먼저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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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면 지난날을 돌아보며 보수화가 된다는 것도

그냥 편하게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균형 있게 양비()론을 잘 펼쳐야 한다.

감정에 치우쳐 내 에고에 갇히면 나의 험 돌아보기가 쉽지 않다.

지난날 공부 잘했던 친구보다

합리적인 사고를 가졌던 친구가 더 잘되어 잘 살아가고 있다.

당장의 이익과 시원함보다는

앞날을 내다보는 긴 안목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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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견디는 고통과 시련이 사람됨을 만든다고

그래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다.

고생은 곧 경험이고 경험은 세상 양쪽을 다볼 수 있는 균형 잡힌 양비()론이다.

잘못된 가치관 형성으로 고생은 실컷 했는데

헛고생 개고생이 된 사례들을 본다.

기회주의에 편승하여 이기적으로 살면

지금은 좋지만 언젠가는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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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뀔 때 마다 양지쪽만 찾아다닌 사람들

말년이 편치를 못하다.

많이 배우고 부도 많이 쌓았지만 그 한계가 들어난다.

그렇게 살려고 왜 그렇게 고생을 했는지

인생 허무감 무상함을 절실히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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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잡힌 시각(양시론) 양심적인 마음을 가지고 산다는 게 쉽지는 않다

그래서 종교도 가지고 수련도 하면서 항시 자기를 갈고 닦는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감정에 치우치기 쉬우며

도가 넘치면 물불을 안 가린다.

큰 사건 사고는 이런 양비()론의 차이에서 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