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어느 날 오후
어느 날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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쨍쨍 내리쬐는 태양 볕이 무지하게 따갑다.
습기로 가득 찬 공기가 불쾌지수를 높이고
짜증나는 무더위의 무기력함을 만들지만
비온 뒤에 활짝 웃는 여름날의 청명한 파란 하늘은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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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전신이 지처서 정신이 혼미하다.
세상이 복잡한 것일까 생각이 많은 것일까.
깝깝한 생각이 몰려오면 불편하고 괴롭다.
그 마음 뚝뚝 털고 비워야 하는데
머리만 그렇지 마음은 따라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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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알아주고 털어 놓을 곳이 있으면 좋으련만
이런 마음 자체가 아니한 생각일까. 세상은 무심하고 조용하다.
이 세상 올 때도 혼자 왔고 갈 때도 혼자 가는 것인데
누구를 붙들고 무엇을 물어보고 무슨 말을 듣고 싶은가.
인생은 어차피 빈 술잔 들고 취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게 취한 척 하기고 하고 취해도 안치한척 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홀로 괴로워 할 줄도 고독 할 줄도 알아야 하며 그러면서 참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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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하나 하나가 모여서 일상이 되고 그 일상이 쌓이면 역사가 되는 것이다.
별것 아닌 것이 별것이 되고 별것인줄 알았는데 별것이 아닌 것도 있다.
나를 중심으로 짜여 진 만남과 헤어짐의 인연들
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고 내 인연 따라 가고 인연 따라 왔으니
속상해도 답답해도 참아야 한다. 어떡하면 좋을까
뒤접어 보면 후회스럽기도 염치스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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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순리적이고 조용한 법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자연으로 돌아가기에 조용해 질 수밖에 없다.
나를 바라보며 나 속으로 들어가면 나도 보이고 세상도 보인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지 길도 보이는데 편한 길 망상만 들추는 것 같다.
천태만상의 복잡한 세상살이 무슨 수로 다 꿰어 맞추고 덮을 수 있겠는가.
뚜껑 열면 죽도 밥도 안 되니 뜸이 들 때까지
마음으로 덮고 참음(忍)으로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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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그렇게 익어가며 성숙해 진다.
참고 참고 참으며 가장 낮은 바닥인생을 가 보아야
원도 한도 다 사그라지고 가슴엔 짠한 뭔가가 흘러내려 후련해진다.
고독 고행 수행 인내 기타 등등........
듣기만 하여도 힘들고 괴로운 말들인데
그 속에 베여있는 땀과 눈물 겪어본 자만이 안다.
힘들고 괴로움을 참고 견뎌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