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직접 제조한 생맥주/
내가 직접 제조한 생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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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친구들이 한창 군에 갈 무렵인
70년대 후반에는 노란 양은주전자에 담아서 파는
막걸리 1되 값이 100원이던 시절 이였습니다.
선술집 나무탁자 걸상에 앉아서 100원짜리 막걸리 한 되 시켜 놓고
검은 녹이 여기저기 나기도 한 스덴술잔에 부어서
깍두기나 왕소금을 안주로 먹던 20대 초반 백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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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1월 달에 친구 한명이 군에 간다기에
그동안 같이 놀던 친구 서너 명이 십시일반으로 조금씩 갹출하여
자주 먹던 막걸리 대신 맥주 한 박스를 사들고 친구 집으로 갔습니다.
부어라 마셔라하며 맥주 한 박스를 다 비우고
밤 2시쯤 골방에서 함께 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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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에 소피가 보고 싶어 밖으로 나오니
춥고 바람은 쌩쌩 부는데 시골이라 뒷간(변소)이 한참 떨어져 있어
가기도 귀찮고 컴컴하고 보는 이도 없어
마루에서서 그대로 내 깔릴까 하다가
그러면 겨울이라 얼어붙을 것 같고
찌렁내라도 나면 욕 얻어먹을 같아
마침 저녁에 먹고 내놓은 맥주빈병이 마루에 있기에
거기다가 시원하게 소피를 보는데 한 병 반이나 되었지요.
비몽사몽간에도 냄새 날까봐 병뚜껑을 찾아 덮어 놓고
그러고 나서 방에 들어와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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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친구 한명이 목마르다고 하면서 밖으로 나가드니
“어?? 여기 맥주 덜먹은 것이 있네” 하면서
내가 새벽에 소피본 병을 들고 들어와서
말릴 겨를도 없이 벌컹 벌컹 들이키는데
내가 소피본 것이라고 차마 그럴 수가 없드라구요
그래서 가만히 지켜만 보고면서 황당해 하는데
얼마나 갈증이 났는지 한 병을 다 마시고 나서
“히야시가 잘 되어 아!! 참 시원하다” 하는데
말은 못하고 속으로 웃으버 죽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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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원효대사는 해골바가지에 담긴 빗물을
맑은 정화수인줄 알고 마셨다가
다음날 해골바가지 빗물인 것을 알고
속에 있는 것 다 토해내고 나니 세상이 달리 보이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데
그 친구에게 그때 이야기 하면 뭐라고 할까
워낙 성질이 급하고 깔끔한 친구라
다 토해 낼 것 같기도 한데
그러면서 무엇을 깨달을까.
ㅎㅎㅎ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