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문같은 말씀

102. 내 영혼은 어디에??/

초막 2011. 6. 29. 12:55

내 영혼은 어디에??

/

둥글둥글 돌고 도는 세상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부자도 많고 가난한자도 많습니다.

누구는 쉽게 쉽게 풀려 가는데

누구는 아주 어렵게 꼬여만 갑니다.

돈에 울고 체면에 억매인 깝깝 답답한 마음

확 떨쳐 버리고 그냥 그렇게 갈 수는 없을까요.

하지만 아직은가야 할 길이 아득합니다.

/

바루떼 한 벌 가사장삼 1벌이면 족하다는 도 통한 스님

중생들이야 경제적 여유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고명한 철학적 가치관도 지녀야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요.

더 잃을 것도 취할 것도 없는 경지에 이르기 까지는

아직은 속물 냄새가 솔솔 풍겨 납니다.

내 인생 내가 간다는데 누가 막아서랴.

결혼하지 않고 나 홀로 인생도 늘어갑니다.

/

예전엔 걸핏하면 점수로 등수로 평가하여 서열을 매겼지요.

그러면서 뭐든 다 잘 하는 만능선수가 되어야 했습니다.

민주주의가 발달하면서 자존심도 인권도 존중하며

이제는 평가방법도 세상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뭐든 한 가지만 잘하면 최고가 될 수 있으며

1등은 한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되는 세상입니다.

반면 어설프면 발붙일 곳이 없어졌습니다.

/

세상이 변하여 어떻게 평가되든 상위권은 상위권

하위권은 하위권에 그대로 머물러 있네요.

가난은 나라님도 못 구한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수능평가 방식이 수차례 바뀌어 왔지만

공부 안하면 높은 등급은 못 받고

상위권은 어떤 평가 방식이든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이 변한다고 달라지는게 아니라.

내가 먼저 변해야 달라지나 봅니다.

/

보다 높고 깊게 넓게 먼 곳을

그리고 한치 앞 미래라도 내다본다면

거기엔 나도 있고 이웃도 있고 친구도 보입니다.

한치 앞도 못 내다보고 살았는데 무슨 큰소리를 치는가.

나만 보고 살아왔다면 반만 보았기에

반쪽짜리 인생을 살아온 것이지요.

내가 중요한 만큼 이웃도 세상도 중요한데

남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것 이였지요.

남 배고픈 것 모르고 내 욕심만 채웠다면

세상 힘든 줄 몰랐으니 무슨 공덕을 쌓았을까.

그 욕심이 편법으로 온당치 못하였다면

들어나지 않아 그렇지 그것은 범죄가 되지요.

(늦게 터져 나오는 과거비리가 이런 것이지요)

/

세상엔 들어난 범죄보다 감추어진 것이 더 많습니다.

그래도 당당하게 활보하며 살아갑니다.

나는 과연 여기에 몇 개나 해당될까??

들어나지 않으니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나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겠지요.

무덤까지 가져가야할 이런 일들이 많으면

살아있는 마음(영혼)도 업장도 무거워집니다.

무거운 것은 내려놓지 않고 죽은 영혼 찾아봐야

운감(귀신의 출몰)이나 제대로 할까요.

살아있는 영혼부터 잘 다스려야겠지요.

/

교회 성당 사찰 이런 곳엔 어떤 영혼이 존재하기에

그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두 손 모아 머리 숙일까.

아무리 높고 존귀한 영혼이 존재한들

살아있는 내 영혼만 할 손가.

지난날 돌아보면 영혼의 맑고 흐림의 기상도에 따라

내 운명도 함께 출렁거렸습니다.

살아 있는 영혼이 탁하면 죽은 영혼은 운감하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운명 걸고 제를 올려봐야 무슨 효험이 있을까요.

/

세상은 천태만상 내가 보여주지 못하면

누가 무어라 해도 아전인수 격이지요,

그런데 무엇을 단정 지어 말할 수 있으며

무엇을 더 알고 싶은가요.

내 영혼 속에서 나를 찾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