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토끼/
집토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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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란 무엇일까
남남이 만나서 맞추고 다듬으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사이가 아닌가.
한평생 살다보면 서로 눈빛만 봐도 상태가 어떤지 잘 아는 사이가 된다.
때로는 갈등도 생기지만 새끼 낳고 궁상떨다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천생연분이 된다.
이 세상 천생연분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어디 있겠는가.
이런 연분 마다하고 돌아서는 사람들도 있지만
행복보다는 불행의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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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20대 산토끼 시절엔
이산저산 이골짝 저골짝 마구 헤집고 다니면서
이풀 저풀 건드려보다가 떠나갔지만 걸리는 것이 없어 홀가분하다.
어린아이 불장난하면 어른들이 밤에 오줌 싼다고 야단치는데
산토끼 불장난 치다가 오줌 싼 것이 연분이 된 친구가 있는가하면
축축한 바지 말리고 그냥 돌아선 친구도 있다.
철들어 불장난 끝내고 결혼이라는 굴레에 갇혀
집토껭이로 신분이 바뀌면 꼼짝달싹 못한다.
지난 산토끼시절 이능선 저능선 탈 때가 그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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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따라 암놈쫓아 토끼몰이 하던 시절
암컷의 요염한 자태 힘 펄펄 넘치는 숯컷의 등등한 기세는 어디가고
지금은 늙어가는 히주구리한 집토끼 되어 갇혀있다.
청춘의 피가 끓는 젊은 시절
능선 타면서 상처받지 않은 청춘이 어디 있겠는가.
세월가니 그날의 상처는 아물었지만 흉터와 딱지는 남아 있다.
잊지 못 할 추억이라며 속앓이 해봐야 다 부질없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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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친구들 집토껭이 된지도 한참을 지났고 집토끼 쉰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졸업한지도 언 40여년이 훌쩍 넘어 갔다.
그 시절의 환경도 지형도 많이 변했다.
그리고 주변 어르신들도 가을벌판 추수한 들녘처럼 어디론가 싹 쓸어 갔다
간혹 쌀에 미 섞이듯 몇몇 어르신들이 계시지만
옛날 그 모습 그 위치는 아니다.
그 자리는 지금 우리친구들이 메우고 있는데
앞으로 40여년이 지나면 우리도 옛 어르신들 신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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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친구들 만나 지난 산토기 시절 이야기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산토끼 때는 쐐주를 즐거이 마셨는데
늙은 집토끼 되니 막걸리가 좋고 쓰잘데기 없는 뱃살과 주름만 늘어 간다.
이젠 집토끼도 산토끼도 아닌 허허벌판 홀로선 이상한 토껭이 같다.
이런 집토끼들이 모여 막거리 잔 기울이며 음담패설 고스돕이 즐겁다.
친구들 중엔 산토끼시절이 특별이 그리운 친구도 있는데
아마 잊지 못 할 사연이 많은가 보다.
그러나 다 지나가는 한때의 바람 아니겠는가.
순풍이든 태풍이든 불어올 때는 시원하지만
바람은 오래 머물지 못하고 곧 사그라진다.
태풍이 되었을 때 뒷 풍경은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산토끼든 집토끼든 활량스런 바람기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알면 병이요 모르면 약이라고 산토끼 시절 다 알려고 하면 병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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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집토끼 물 건너간 산토끼 다시 잡는다고
집토껭이된 산토끼가 다시 돌아 돌아오겠는가.
1년에 한 번식 동창회 때 우리를 벗어나 보지만
쫓아오는 친구도 잡아가는 친구도 없다
그리고 집토껭이가 산토껭이 되는 것도 아니니
안심하고 동창회 자주 오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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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의 엄담패설의 한 단면을 선문답으로 쉽게 풀어 보았는데
들을 때는 그냥 깔깔 거렸는데
막상 써 놓고 보니 좀 적날한 것 같다
모이면 이런야기 잘 하는 친구들이 많지만
후배나 마누라들 앞에서는 부처가 된다.